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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사회정책부장
경기도 안산의 나영이 사건 현장에 가볼 생각을 한 것은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이었다. 나영이는 작년 12월 학예회 준비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등교하다 변을 당했다. 범행 시각은 아침 8시에서 8시 반 사이였다.

어떻게 이런 기막힌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아무리 짐승 같은 성범죄자라지만 동이 튼 아침 시각에, 그것도 유흥가 우범지대가 아닌 학교 옆에서 끔찍한 성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학교 등굣길까지 성폭행범에 유린당하는 우리는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일까.

현장은 나영이 사건이 우발적 사고만은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곳은 대로변 바로 뒤쪽에 분지(盆地)처럼 가려진 사각지대였다. 나란히 붙어 선 교회와 병원 건물 사이로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계단식 골목길이 나 있다. 추웠던 그 겨울날, 57세의 범인은 계단 길을 올라온 나영이를 낚아채 골목 초입의 교회 건물 화장실로 끌고 갔다.

화장실은 건물 계단에 가려 밖에선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시선이 차단된 뒷골목에서 전과 14범의 범인이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다루기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골목길에서 10여m만 더 가면 대로변이다. 아침 8시, 출근길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갔을 시각이었다. 나영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도 바로 옆으로 내다보인다. 나영이는 공포로 울부짖었겠지만 지척에 있었을 세상 사람들은 누구도 도와주러 오질 않았다. 골목길과 대로변 사이 10여m 거리는 나영이에게 천국과 지옥을 가른 경계선이었다.

현장을 보고 나는 범인 조두순이 이 장소를 미리 점찍어 두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성폭행을 노리는 범죄자라면 눈독 들였을 만한 곳이었다. 허름한 3층짜리 교회 건물 주변을 자동차 정비소와 병원·약국, 택배회사의 빈 트럭들이 병풍 모양으로 둘러서 있다. 주변 상인들은 "점포 셔터가 내려진 밤엔 다니기가 으스스했다"고 했다.

그런 취약지대를 초등학생들이 매일 등하교 때 오가고 있었지만 아무런 방범 대책이 없었다. 나영이를 만신창이로 만든 그 악몽의 공간을 바라보며 나는 때늦은 가정을 해보았다. 만약 이곳에 방범초소가 있었다면? 학부모회나 주민들이 등하굣길 순찰을 다녔다면? 그 흔한 CCTV라도 몇 대 표시 나게 달아 놓았다면?

나영이가 다니는 A초등학교 아이들 집은 두 부류로 갈린다. 4차선 도로 위쪽엔 잘 정비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아래쪽은 서민 주택가다. 나영이네가 사는 다세대주택은 골목길 아랫동네에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전형적인 서민 주거지였다.

나영이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 어머니는 가사 도우미로 일했다. 이웃 주민들 사정도 비슷했을 것이다. 매일 일 나가고, 먹고살기 바빴을 아랫동네 사람들에겐 아이들 안전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들을 대신해 공공의 안전망을 만들었어야 할 지자체나 지역사회도 무심하기만 했다.

아동 성폭력은 가난한 집 아이부터 노린다. 13세 이하 성폭력 피해자의 다수가 생계에 바쁜 부모로부터 방치되는 사회적 약자 계층 아이들이다. 나영이 사건 역시 형사(刑事) 문제인 동시에 '빈곤 이슈'다.

나영이는 매일 아침 문제의 골목길과 교회 건물 앞 사각지대를 지나 학교에 다녔다. 나영이뿐 아니라 아랫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대개 이 지름길을 이용했다. 조두순이 골목길을 지키고 있던 그날 아침, 나영이가 아니었더라도 아랫동네 아이 누군가는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나영이에게 미안해 고개 들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은 짐승 같은 범인에게만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학교 앞 사각지대를 방치한 우리 어른들의 무심함 역시 공범(共犯)이었다. 현장에 가보고 그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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