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0년이 된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한 채 효창공원에는 그의 가묘(假墓)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안 의사는 순국 직전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이장해 달라"고 했다. 안 의사의 유언을 받드는 일은 우리 후손이 당연히 수행해야 할 몫으로 남아있다. 그동안 안 의사의 유해발굴사업은 1986년 당시 외무부에서 중국 정부에 유해 매장지 확인과 관련한 조사협조를 의뢰한 이래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여러 차례 진행하여 왔다. 2005년 유해발굴사업을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남북 공동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하였으며, 2008년에는 남한 단독 조사도 무방하다는 통지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2008년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매장 추정지에 대한 발굴을 시도했지만, 유해를 찾아내지 못하여 실망을 안겨준 바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사업은 그동안 증언에만 의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관련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만시지탄(晩時之嘆)이 있지만 합리적인 판단이다.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일본측에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일제의 한국 강점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동안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안중근 공판기록'과 주한 일본공사관기록 중의 '안중근 관계자료'를 간행한 바 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1994년 일본 외무성의 외교사료관에 소장되어 있는 안중근 관계 문건들을 수집해 4800여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아주제일의협(亞洲第一義俠)'이란 책을 간행했다. 또한 연구자들에 의해 중국지역에서 발행된 신문 중 안중근 관련 기사를 수집하여 간행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 유해와 관련한 자료는 사형집행 보고서에 "오후 1시에 감옥서의 묘지에 매장하였다"는 기록과 뤼순(旅順) 형무소의 배치도를 확인한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은 침략전쟁을 자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보고서를 본국에 보냈다. 최근에 발굴된 일본군 보병 제14연대의 '진중일지'처럼 각 부대별로 상세한 전투 일지도 남기고 있다. 이 진중일지에는 한국의 군대 해산 이후 전국에서 봉기한 의병을 탄압한 사실이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을 만큼 풍부하고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일제가 윤봉길 의사의 사형 장면까지 사진으로 남긴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 바가 있다. 윤 의사의 사형 장소에 대한 지형도까지 들어있는 보고서가 일본방위연구소 도서실의 자료 더미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봉창 의사의 '옥중수기'와 재판기록의 일부도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찾아냈다. 이 자료의 발굴로 이봉창 의사가 법정에서 "후회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본인 학자의 주장은 억설(臆說)이었음이 판명된 바 있다. 이런 자료들도 처음에는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들이다. 따라서 안중근 의사의 순국과 유해와 관련한 상세한 자료가 일반인의 접근이 엄격히 통제된 문서고 속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일본이 알면서도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 일본 스스로도 자료의 존재를 찾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술국치 100년을 바라보는 한일 간 시각의 차는 여전히 크다. 한국은 항일의 사실과 현장을 찾아내어 과거의 아픔을 기억함으로써 교훈으로 삼으려는 데 반해, 일본은 침략의 사실을 호도하고 가급적 은폐하고 잊고자 한다. 그러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픔은 치유하지 않고는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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