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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자족 생태계’ 자연 흉내내기, 한낱 꿈으로
아낌 없이 주는 자연, 아낌 없이 써버리는 인간
하니Only 조홍섭 기자
» 어항을 꾸미면 자연이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어항에 물고기를 길러 보자. 계곡에서 잡은 버들치 몇 마리를 페트병에 담았다. 어떨까. 당장은 잘 산다. 수돗물을 넣지 않고 계곡물을 넣어주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죽고 만다. 어릴 때 일이 기억나는가?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과학적 호기심 때문에 죽어갔는지.

버들치를 더 오래 살리려면 병보다는 자연과 조금 더 비슷한 어항이 있어야 한다. 어항에 모래도 깔고 수초도 심어준다면 더욱 좋다. 그래도 자연에는 못 미치는 점이 있다. 무얼까. 우선 물결이 없다. 그렇다면 기포발생기를 설치해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 준다. 다음엔 물벼룩과 같은 먹이가 없다. 그러면 사료를 넣어준다. 새 물이 계속 들어오지 않는다면 가끔 물을 갈아준다. 이제 자연과 거의 같아졌는데, 왜 버들치는 알을 낳지 않는 걸까. 그건 계곡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계절과 밤낮의 차이 없이 온도가 거의 일정한 방안에서 버들치는 생식리듬을 잃고 만다. 어항을 베란다에 내어놓고 실지렁이나 물벼룩 같은 자연먹이를 준다면 혹시 알을 낳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전기와 사료를 공급받아야 유지되는 ‘반쪽 자연’일 수밖에 없다.

‘우주선 지구호’ 제대로 운항하기 위한 최고 매뉴얼은 자연

» 어항에 자연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하더라도 전기와 사료를 공급받아야 유지되는 ‘반쪽 자연’일 수 밖에 없다.
자연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앞의 예에서 보았듯이 정작 자연을 흉내 내기란 쉽지 않다. 자연은 생물과 무생물로 이뤄진다. 동물, 식물, 미생물 등 생물들은 흙, 공기, 햇빛, 물과 같은 무생물 요소를 잘 활용하면서 살아간다. 자연은 적어도 30억 년 이상 진화해온 결과이다. 그동안 생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가장 잘 적응하는 방식으로 거듭났다. 그래서 생물은 자연의 가장 알뜰한 소비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런 측면에 주목한다. 우주여행이 그런 예이다.





우주인 한 사람이 우주에서 1년 간 머무는 데는 물, 공기, 식품이 적어도 12t이나 필요하다. 3명의 승무원이 왕복 2년 걸리는 화성여행에 나선다면 무려 72t을 싣고 가야 한다. 로켓으로 화물 1㎏을 쏘아 올리는 데 수백만 원이 드는 우주여행에 트럭 수십 대 분량의 물과 통조림 따위를 싣고 5600만㎞ 이상 떨어진 화성까지 날아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우주인들은 지구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재활용을 철저히 한다. 지금 우주에 떠있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도 승무원들은 오줌을 걸러낸 다음 증류해 식수로 마신다. 샤워나 세수한 물도 여러 번 걸러 수질검사를 통과하면 식수통에 붓는다. 우주선의 동력원인 연료전지를 가동하면 부산물로 물이 나오는데. 이것도 식수로 쓴다. 필요한 물의 대부분은 이렇게 조달한다. 물은 마실 뿐 아니라 전기분해해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만드는 데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주인들의 배설물은 어떻게 할까. 진공 건조해 모아두었다가 지구로 가져온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화성처럼 장거리 여행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학자들은 모든 물질의 재활용과 재사용률을 100% 가까이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고형 배설물에서 수분을 빼내고 나머지 찌꺼기로 식물을 길러 식량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우주선 농장’이다. 미래 우주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각종 기계와 장치가 들어있는 칸보다 태양전지로 햇빛을 비추는 인공농장이 더 많을 것이다. 이 농장은 식량생산뿐 아니라 탄산가스와 미량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산소를 만들어내는 기능도 한다. 최고의 과학기술을 동원한 장거리 우주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텃밭에서도 적용되는 원리라는 사실은 놀랍다. 사실 지구는 직경이 1만 2000㎞인 거대한 우주선 아닌가. 이 ‘우주선 지구호’가 제대로 운항하기 위한 최고의 매뉴얼은 바로 자연이다.

달이나 화성에 인간 거주지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물거품

» 생물권2. 이 인공지구는 바다, 습지, 열대우림, 사막, 초원, 농경지 등이 포함된 지구의 축소판이다.

자연 흉내 내기는 어린 과학도들만의 호기심은 아니다. 어른들도 한다. 그것도 엄청난 규모로. 미국의 백만장자인 에드워드 배스는 작은 지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미국 애리조나 주 남부 오라클의 사막지대에 1만 2000㎡의 거대한 유리온실을 만들었다. ‘생물권 2’라 이름 지어진(생물권 1은 지구이므로) 이 인공지구 속에는 지구의 축소판인 바다, 습지, 열대우림, 사막, 초원, 농경지 등을 만들었다. 염소, 원숭이, 지렁이, 벌새 등 3800여 종의 각종 동·식물과 함께 우주복 비슷한 단복을 입은 자원 참가자 남녀 4명씩 8명은 외부와 차단된 이 인공지구에서 1991년부터 2년간 지냈다. 마치 어항 속 버들치처럼. 만일 이들의 실험이 성공적이어서 온실 내부의 공기와 영양분 순환이 잘 이뤄져 외부의 지원 없이 생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달이나 화성에 비슷한 인간 거주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2년 뒤 실험은 일단 끝났지만 자급자족 생태계를 구성하려는 시도는 무참히 실패했다. 새와 동물, 곤충들은 번성하기는커녕 대부분 죽어버렸다. 바퀴벌레와 개미들이 ‘생물권’을 점령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2억 달러가 들어간 이 시설이 8명의 대원이 숨쉬기에 충분한 산소조차 공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애초 약속과 달리 외부에서 산소를 긴급 투입해야 했다. 마치 어항의 기포발생기처럼 말이다. 우리의 지구 ‘생물권 1’과는 사뭇 다르다. 인류는 숨 쉬는 산소 값으로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지만 60억 명의 지구인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도 넉넉한 산소가 공급된다. 지구는 참으로 우리에게 아낌없이 준다!

‘생물권 2’ 실험의 교훈은 분명하다. 비록 자연이 거의 무료로 인간에게 제공해 주는 서비스지만 인공적으로 만드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이런 고마운 기능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그 가치를 알게 되는 일이 많다. 한 연구를 보면 인간사회에 직접 제공되는 자연의 서비스는 돈으로 따져 연간 약 36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이 액수에 이른다. 그런데도 이런 자연의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되기도 전에 낭비되고 있다.

지구에 있는 수많은 생물의 활동이 어우러져 이런 서비스를 만드는데, 인간이 그것을 독차지해버리거나 망가뜨리고 있다. 예를 들어 육지에 있는 담수의 절반을 인간이 인간만을 위해 쓴다. 토지의 2분의 1에서 3분의 1, 그리고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영양물질을 만들어내는 1차 생산의 5분의 2 이상도 인간이 자기만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지구를 자기 것인 양 쓰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을 훼손하면 그 순간 자연이 묵묵히 하고 있던 어떤 소중한 기능이 사라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인류는 현재의 자기 이익에 눈이 어두워 아낌없이 주는 자연의 깊은 혜택에는 눈을 감고 있다.

‘개구리 다리의 비싼 대가’ 뼈아픈 교훈, 망각의 늪

» 식용으로 국내에 도입한 황소개구리
그런 뼈아픈 교훈이 있다. 이른바 ‘개구리 다리의 비싼 대가’로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다. 프랑스의 한 여배우는 우리나라의 보신탕 문화를 ‘야만’이라고 비난해 종종 물의를 빚고 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개구리 다리를 즐겨 먹는다. 그것도 제 나라 것이 아닌 제3세계에서 수입해서 요리한다. 아마 자기 나라의 개구리를 잡아먹었다가는 환경보호론자들로부터 혼뜨검이 났겠지만, 궁금한 건 왜 다른 일에는 그처럼 완고한 환경론자들이 개구리 다리를 수입해 백포도주와 함께 즐기는 미식가들에게는 이다지 관대하냐는 것이다.

실은 이런 개구리 수출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이 생태계 교란의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가난한 아시아 농부들에게 개구리 다리는 짭짤한 현금 수입원이다. 1990년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에서 수입한 개구리 다리는 모두 6천t이 넘는다. 개구리 한 마리가 기껏 200g이니 다리가 몸무게의 절반이라고 가정한다면, 적어도 한 해에 3천만 마리가 유럽인의 입맛을 위해 허리가 잘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개구리를 주로 수입한 나라는 룩셈부르크, 벨기에, 프랑스이고 주 수출국은 인도네시아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개구리 수출의 대종을 차지하던 나라는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인도와 방글라데시였다. 이들은 왜 짭짤한 개구리 다리 수출사업을 중단했을까. 인도와 방글라데시에는 논이 많다. 가난한 농민들은 비료나 농약을 사서 쓰기가 힘들어 전통지식에 의존해 농사를 지었다. 전통 지혜란 바로 생태학적 원리에 기대는 농법이다. 그 핵심이 아시아산 황소개구리였다. 이 개구리는 매일 자기 체중보다도 많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논 1천평의 해충을 없애는 데는 개구리 50마리로 충분했다. 게다가 개구리의 배설물은 비료가 됐고 개구리를 먹는 논 뱀은 논의 들쥐도 잡아먹었다. 그런데 개구리 다리를 수출하면서 당장 돈이 궁한 농민들은 닥치는 대로 개구리를 잡아냈다.

얼마 되지 않아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해충이 들끓어 살충제를 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또 말라리아나 뇌염 같은 해충이 전파하는 질병도 퍼졌다. 1981년 4천t이 넘는 개구리 다리를 수출했던 인도는 살충제 수입이 급증하자 1987년 수출을 중단했다. 방글라데시도 1989년부터 1992년 사이 잠정적으로 수출을 중단하는 조처를 취했다. 뒤늦게 개구리 다리 수출에 나선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 문제가 부닥쳤다. 1989년 1천만 달러어치의 개구리 다리를 수출한 대신 살충제는 3천만 달러어치를 더 수입해야 했다. 살충제를 많이 써 생기는 건강이나 생태계 피해를 계산하지 않더라도 개구리 다리의 손해는 명백했다. 개구리 다리에 관한 이 이야기는 개발과 보전에 관한 책자에 널리 소개돼 있지만, 그 교훈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개발도상국은 그리 많지 않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이 글은 졸저 <생명과 환경의 수수께끼>(고즈윈/2005/8500원)의 ‘고맙다 지구야’를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조홍섭 기자의 <물바람숲>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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