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흘이 멀다 하고 언론에 나오는 말이 출구 전략(Exit Strategy)이다. 출구전략을 간단하게 풀이해보면 금리 인하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한다는 의미다.
즉 경기 침체기 때 비정상적으로 풀었던 돈을 금리 인상을 통해 다시 거둬 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조치가 늦어질 경우 유동성 통제력 상실로 장기 침체의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함정에 빠져 손을 쓰지 못하는 단계가 올 수 있다.
1. 잃어버린 10년
금리인상이 부른 헤이세이 불황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근 불경기 상황에서 과연 한국의 출구 전략 시기는 언제일까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전략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는 케이스는 이른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한 일본 중앙은행의 출구 전략이었다. 한국에서 선거용 캐치프레이즈로 써 먹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즉 1990년대 ‘헤이세이 불황’을 부른 결정적인 이유는 부실 채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89년 5월 2.5%이었던 금리를 90년 8월까지 6%로 끌어올린 조치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대대적인 부동산 자산 붕괴의 스타트를 끊었다. 현재의 한국 상황과 완벽한 복사판이다. 한국은행 총재가 이걸 모를 리가 없다.
한국은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금융 부문보다도 실물 부문에서의 부동산 자산 가격 변동이 국내 경기 변화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나라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구조가 비슷한 점 또한 실패의 학술적 논문 사례를 다시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
2. 미국 경기회복?
인플레이션 압력 휘발유가격 때문
통상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경우 생산자 물가 상승률이 -2% 아래로 떨어지면 생산자 물가가 내려간다. 그로 인해 소비자 물가 하락으로 이어진다. 1분기 디플레이션 조짐에서 6월에 생산자 물가(PPI)가 상승하면서 소비자물가(DPI)가 올랐다고 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경기 회복 신호라고 규정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
올해 물가 상승률을 끌어올린 것은 휘발유 가격이 17%가 넘게 급등하면서 국제 유가가 상승한 데 따른 간접 효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미국 FRB의 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핵심은 물가가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자산 가치 회복이다, 최소한 올해 안에는 물가 인플레이션 압력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부동산 주택 시장 가격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가? 물론 미국의 6월 기존주택 거래는 전달에 비해 3.6% 늘어난 489만 채를 기록하며 석 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 점 자체는 호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주택 거래가 늘어났다는 것이지 주택 가격 자체가 정상 수준으로 상승·회복되고 있다는 신호는 그 어디에도 없다. 현재는 10%에 육박하는 미국 실업률이 주택 가격의 추가 상승을 제한하고 있다.
엄청난 달러 유동성 자금으로 이제 간신히 하락세가 정지한 것일 뿐이다. 미국 FRB는 금리를 인상할 그 어떠한 이유도 없다.
3. 한국-미국 금리역전
저금리-고환율 역전은 무리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역전이 된 2005년의 경우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 2005년 경에는 900원대의 저환율 기조 속에서 세계 4위 수준의 막대한 외환 보유고가 외환 시장의 안정성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미국은 경기 과열에 따른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한국은 내수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서 저금리 기조를 바탕으로 무게 중심을 국내 문제로 옮김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을 용인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일본을 제외한 각국의 금리 수준이 현재와 같이 기록적인 저금리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미국과 일본·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가 ‘사실상 제로 금리에 가까운 저금리 상태’다. 이런 여건이 한-미 금리 역전을 용납할 수도 없다. 이걸 용인할 경우 핫머니의 자금 이탈에 따른 금융 시장의 충격으로 또 다시 제2차 미국발 금융 쇼크를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전세계적인 저금리 상황이 이어지고 2005년도 수준의 낮은 환율이 되지 않는 이상 한-미 금리 역전은 무리다. 한국이 미국보다 앞서서 출구 전략을 실행하는 건 이미 정해진 사실이겠지만 금리를 인상하는 폭을 결정하는 것은 부동산 자산 가격 회복>물가 상승률에 더 무게 중심이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1970년대 후반에 제2차 오일 쇼크로 인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FRB 중앙은행 금리를 인상시켜서 1982년까지 경제 성장률이 타격을 받은 학습 효과가 있다.
현재 미국 경제의 시한폭탄은 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보다는 실업률이다. 집값 상승을 통한 정상 가격 회복이 발목을 잡혀 올해는커녕 2010년 2분기나 돼서야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 지금은 제2차 경기 부양을 해도 모자란 판국이다. 단순히 지금 돈이 많이 풀렸다고 출구 전략을 쓴다는 것은 현재 너무 무리한 주문이다.
4. 금리인상
한국은 11월 또는 내년 1분기 예상
한국의 금리 인상은 3분기 경제 성장률이 2008년 3분기 수준으로 회복할 경우에는 11월에 0.25% 내외의 최소 한도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더블딥에 빠질 경우에는 2010년 1분기에 한국은행 총재의 2010년 4월 퇴임과 맞물려 3월께에 최소한도의 금리 인상으로 조정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단기간 내의 금리 인상을 할만한 인플레이션 위협은 없을 뿐더러 3~4분기 내에 미국의 가장 중요한 주택 가격(미국 주택 거래량이 아니라)이 확실하게 반등해야 소비부터 실업률까지 상쇄된다. 현재 그런 징후가 전혀 없고, 정황상 미국 금리 인상은 2010년 2분기로 대폭 늦어진다
이러한 단기적인 금리 인상의 위험이 사실상 없는 가운데 한국은행에서 자체적으로 유동성을 흡수한다 치더라도, 국내 부동산 가격의 추가 상승은 앞으로 최소 1년간은 불가피하다. 금리 정책이 6개월~몇 년씩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를 정부에서 LTV와 같은 부동산 규제로 막기에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이젠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집값 격차가 핵심 이슈로 터져 나올 것이다.
■ 경제용어
* 출구 전략(Exit Strategy)
경기 침체기 때 비정상적으로 풀었던 돈을 금리 인상을 통해 다시 거둬 들이는 것.
* 헤이세이 불황
1989년 쇼와(昭和)천황의 뒤를 이은 헤이세이(平成)천황의 취임과 더불어 시작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경제불황을 가리킨다. 일본 부동산 시장은 그가 취임하던 해 거품이 걷히기 시작해 일본 경제 전체를 장기 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즉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기업이나 개인이 투자했던 돈이 거품처럼 사라졌고, 대출을 얻어 부동산을 샀던 기업과 개인은 은행에 돈을 갚을 수 없어 파산이 속출했다.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한 은행들도 줄줄이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 더블딥 (double dip)
두 번(double) 떨어진다(dip)는 뜻으로 double+dip 의 합성어, 더블딥은 경제학 용어로서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로 규정되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직후 잠시 회복 기미를 보이다가 다시 2분기 연속 마이너스성장으로 추락하는 것을 말한다. 불황에서 벗어난 경제가 다시 침체에 삐지는 ‘이중 하강’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써 두 번의 침체를 거치면서 회복기에 접어들기 때문에 ‘W 자형 경제 구조’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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