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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은 - 꼬마마녀

People are strange - Doors

리아 - 난 그래

ATC - Thinking of you

루두스(Ludus) : 루두스 타입은 장난스러운 우연한 사랑을 말한다. 서로 크게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으나 서로 만나는 게 재미있고 즐거우니까 좋아하는 관계다. 상대가 다른 만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지 만 서로의 의존을 피하기 위해 서로 용납하고 관계를 유지한다. 특별한 온정의 상호 교류 없으나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The Timeless Way of Building 여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 이지만, 이미 많은 소프트웨어 관련 책에서 인용이 된다. 역시나, 소프트웨어가 단지 컴에 있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 공간과 사람, 생활속에서 찾아보고 생각하게 한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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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아스피린 75에서 81밀리그램mg 섭취. 중풍 뇌졸중 같은 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좋은 방책인 것으로 최근 연구 결과 밝혀졌다.

그러나, 병원에서 흔히 처방되는 다량의 아스피린으로는 질환 예방은 커녕 위장 출혈과 같은 부작용까지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켄터키 의대에서는 11건의 아스피린 관련 의료 기록을 조사한 결과 하루에 30mg의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혈액내 응고 성분이 침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증명됐다. 실제로, 의학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하루 아스피린 복용량은 1300mg이다.

미국에서만 5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는데, 대부분 심장병이나 중풍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하루에 최소 81mg에서 325mg까지 복용을 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정도 심장마비 증상을 겪은 사람이라도 하루에 81mg 이상의 아스피린을 복용해선 안된다고 이번 연구에 참가한 의사들은 경고했다. 되도록 적을 양의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이 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출처: Low-Dose Aspirin Best for Preventing Heart Attack
http://health.yahoo.com/news/174946;_ylt=AnjDMiS6dlcrGS.0ht3nJHCmxb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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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남극 로스해에서 길이 10m의 거대 오징어가 발견된 이래 15일 아프리카 기니해안에서 또 다시 바다괴물이 발견되 세인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바다괴물은 분류를 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게 생긴 것이라서 그야말로 '몬스터(괴물)'로 취급되고 있다.

러시아 프라우다 인터넷판은 14일(현지시간) 최근 아프리카 기니 해안에 떠밀려온 정체모를 괴 생명체가 발견됐는데 네 개의 발, 엄청나게 큰 입, 긴 꼬리 그리고 온 몸에 긴 털이 나 있는 '바다 괴물'이라고 보도했다.

프라우다는 fishki.net에 올라온 사진 5장을 공개했으며, 이 바다괴물이 '어글리 몬스터'로 불리며 매우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어 과학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고 밝혔다.

프라우다는 또 발견 당시 괴물은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상태였다고 밝히고, 이 지역에서 이미 이와 비슷한 종류의 동물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사진이 공개되자 네티즌들은 놀라움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코끼리나 하마가 버려져서 썩은 것' '괴물이 아니라 부패한 고래의 사체'라는 등 추측과 함께 괴물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앞서지난 2월말에는 뉴질랜드 어부들이 남극해에서 무게 450여kg의 대왕오징어를 잡았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발견된 오징어 중에서 가장 큰 이 오징어는 몸통 길이가 10m 정도이고 무게는 종전 최고기록을 무려 150㎏이나 넘어서는 기록이다.

뉴질랜드 언론들은 메로 잡이 어선이 최근 남극의 로스 해(海)에서 괴물 오징어를 잡았다면서 '메소니코테우티스 해밀토니'라는 학명을 지닌 이 거대 오징어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자이언트 오징어보다 몸길이는 짧지만 무게가 훨씬 더 많이 나가는 초대형 오징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런 오징어가 잡힌 것은 미스테리한 일이며 잡히지 않았을 경우 길이는 14m까지 자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뉴질랜드 정부는 이 거대한 오징어의 해동을 위해 대형 오븐을 사용할 예정이며 이후 연구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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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더이상 ‘이해없는 신앙’강요 말라>
1.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공화국이며 민주시민사회의 모든 원칙을 준수한다. 나는 민주사회의 한 시민이며 개인이다. 내가 말하는 기독교는 매우 단순한 이런 전제들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의 기독교의 이해방식에 관한 것이다.

<개인적이고 내면적이지만 사회적 가치도 거부 안해>
2. 그렇다고 나의 기독교에 관한 논의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나 어떤 국적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는 종교와 국가의 어떠한 유기적 관계도 거부한다. 종교는 오히려 그러한 국가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인간 개체의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회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것이며, 제도적이라기보다는 내면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가 사회적 가치, 즉 보편적 가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한 시민의 실존의 선택이나 결단 대상일뿐>
3. 나의 기독교에 관한 논의는 매우 단순한 나의 실존적 사실, 즉 내가 민주시민사회의 한 시민이라는 원자적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즉 기독교는 어떤 종족이나 국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구속적인 제도가 될 수가 없으며 나 개인의 실존의 선택이나 결단의 대상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한 종교의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있을 수 없으며 오로지 대한민국사람이 구원을 얻을 뿐이다. 그 사람은 개인이며 시민이다. 시민사회는 인간 개인(individual)의 존엄을 지상의 가치로 삼는다. 개인이 신이라는 존재자에게 복속되는 제도적?법적 권위는 전무하다.

<기도는 집단적인 게 아니라 나의 실존과 하나님이 만나는 것>
4. 종교의 초기 제식행위는 대부분이 집단적인 것이었다. 부족집단의 춤(tribal dance) 같은 것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였다. 아프리카의 민속춤이나 우리나라의 영고(迎鼓)·무천(舞天)이 모두 그런 류의 것이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의 핵심적 신앙행위는 기도이다. 기도는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며 그것은 나의 내면 속에서 나의 실존과 하나님이 만나는 것이다. 예수도 기도를 가르쳤다. 기독교는 이미 출발부터 개인적인 것이었다.

<기독교가 구약적 율법주의 따른다면 유대교의 아류일뿐>
5. 기독교는 민족종교가 아니다. 유대민족의 모든 제식(할례, 절기 준수 등)이나 혈통주의적 관습의 강요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이방선교를 통해 초대교회를 구축했다. 그것은 “예수”라는 신념을 선택한 개인들의 공동체운동이었다. 그리고 기독교는 출발부터 유대민족의 율법주의를 거부했다. 어떠한 종교도 율법주의를 거부하지 않고서는 위대한 종교가 될 수 없다. 공자도 기존의 의례(儀禮)의 권위를 거부한 사람이었고, 불타도 베다의 권위를 거부했다. 기독교가 이제 와서 구약적 율법주의를 직접적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유대교의 아류일 뿐, 기독교가 아니다.

<교회는 교리가 아닌 사랑 믿음 소망 생존의 공동체운동>
6. 나는 교회를 공동체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동체운동의 기본이념은 교리가 아니요, 사랑, 믿음, 소망, 생존과 같은 아주 보편적 정서(emotion)이다. 교회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배타성(exclusiveness)이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교리 이외의 어떠한 종교적 신념도 다 배제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교리라는 것은 대부분 후대의 역사적 정황 속에서 형성된 것이며 성서적 근거가 박약하다. 이것이 조직신학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독교의 배타성도 유대인의 다이애스포라와 유사한 피박해집단의 역사적 특수상황에서 비롯된 아폴로제틱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 곧 기독교의 본질은 아니다.

<유교·불교·토속 무교 등 종교신념체계와 공존해야>
7.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오늘 여기에서의 나의 실존을 생각할 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공동체는 기독교라는 교리집단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 유교, 불교, 천도교, 원불교, 토속 서낭당 무교, 이슬람, 여타 다양한 종교신념체계와의 공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들 모두가 인간 내면의 고독(solitude)을 해결해가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기독교가 이러한 공존을 배제하는 독존만을 고집한다면 나는 그러한 기독교에는 일순간도 나의 에너지를 할애할 수 없다.

<종교는 나쁜 것이며 악한 것 일 수 있다>
8. 종교는 반드시 좋은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발상이나 강박관념을 우리는 버려야 한다. 종교는 나쁜 것이며 악한 것일 수 있다. 종교는 인간의 모든 야만성의 마지막 보루일 수도 있다. 종교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아름다운 사회일 수가 있다. 단지 우리가 이러한 사회를 꿈꿀 수 없는 이유는 종교를 통하여 형성되어온 인류문명사의 기나긴 관성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종교는 인간세를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러한 거대한 추세 속에서 인간세는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고려사회를 장악하고 유교가 조선왕조를 장악하고 기독교가 20세기 우리민족의 식민지역사를 장악한 그러한 강력한 장악성을 21세기부터는 기대할 길이 없다.

<어느 한 시점에서의 성서 정본 존재하지 않아>
9. 기독교는 2천 년 동안 서서히 형성되어온 것이다. 이 말은 곧 어느 한 시점에서의 기독교의 모습이 기독교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형성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1세기의 기독교, 4세기의 기독교, 16세기의 기독교, 21세기의 기독교가 모두 동등한 자격을 지니는 기독교일 뿐이다. 성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시점에서의 성서의 정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4세기말에나 모습을 드러낸 27서체제의 성서나 20세기 한글판개역성경은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신약성서의 다른 판본일 뿐이다. 신학도들이 기준으로 삼는 희랍어성서도 19세기말에나 그 모습이 갖추어진 것이다. 희랍어성서 자체가 2천 년 동안 진화해온 것이다. 현재의 27서체제의 성경이 기독교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생각도 매우 유치한 발상이다. 가톨릭은 아직도 성서에 근거가 없는 많은 후대의 추가전승을 교리로 신봉하고 있다.

<종교적 합리화의 재소통 거부하면 사기꾼의 횡포>
10. 나는 기독교의 “이해”(Understanding)를 위하여 상기의 책 2권을 썼다.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 “믿음”은 간편하고 또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위태롭다. 그러한 믿음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믿음을 가능케 하는 역사적 환경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독교는 더 이상 핍박받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기독교를 발생시킨 그러한 절박한 상황의 강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제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반복적 제식은 특별한 감정을 수반하며, 그 감정은 신앙을 유발한다. 그리고 제식은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신화는 합리화된다. 이 합리화단계에서 우리가 말하는 조직적 종교가 그런데 모든 종교적 합리화(Rationalization)는 인간의 체험에 관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그 정보에 대하여 독특한 권위를 부여한다. 나는 이러한 합리화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의 자유로운 지식의 장 속에서 무전제적으로 다시 소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을 거부하면 그것은 천박한 독단일 뿐이다. 현대시민사회에서 독단을 중세세기방식의 도그마틱스로서 유지하려는 것은 사기꾼들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 새롭게 활성화시키는 촉발제 역할 자부>
11. 나의 “이해”의 노력은 한국의 기독교를 새롭게 활성화시키는 촉발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21세기의 종교가 “이해없는 신앙”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양아치적 권위의식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시민사회의 논리에 의하여 무기력하게 될 뿐이다. 나의 “이해”가 많이 대중에게 읽힐수록 21세기의 한국기독교는 희망이 있다. 성서는 이제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이해 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만이 21세기를 버텨낼 수 있다.

<교회가 신학자의 신념과 언어체계를 콘트롤하면 안돼>
12. 나는 기독교에 기웃거리는 이방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기독교의 핵심 인사이더로 살아왔으며 기독교의 가치를 체화한 패밀리 전통 속에서 성장해왔다. 나는 나의 진리탐구가 이 사회의 많은 건강한 기독교운동을 촉발시킬 수 있기를 염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신학계가 자유로운 담론의 장을 확보해야 한다. 교회는 신학자들의 신념이나 언어체계를 콘트롤해서는 안된다. 교회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관심이 신학의 자유로운 개화(開花)를 질식시켜서는 아니된다. 모든 교회는 훌륭한 신학자를 양성하는 데 교육장학금으로서 최소한 십일조를 내어야 한다. 그것은 교회 존립의 이유며 양식(良識)이며 의무다. 그리고 교육헌금에 대하여 일체 이념적 클레임을 해서는 아니된다. 한국교계의 생명력은 오직 자격있는 신학자와 수준높은 목회자의 양성에 있다고 나 도올은 굳게 믿는다.

도올 김용옥
2007년 5월 11일 밤
駱閒齋에서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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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녀석 또 이상한 소리 했네;;
똑똑한건 인정하겠는데~ 어쩌라고?
저넘 머리속은 무한한 우주인가?? 똑같은 인간이며 한정된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뭘 잘난척이여!!!
너가 믿고있는 지식은 니 머리에 넣고넣고 넣어도 다 못넣으니까
계속 넣기만혀~!! 얼렁뚱땅 조합해서 내뱉지말고!!! 제발쫌!!!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와 이단의 차이>
학교에선 1+1=2 이라고 한다.
근데 물방울과 물방물을 합치면 1이다.
1+1=1 이된다. 둘 다 틀린말은 아니다.
이단은 1+1=1이 맞으니까 1+1=2가 틀렸다고 한다.
1+1=1이 맞으면머해! 부피가 커지는건 생각안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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