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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따돌림에 눈물 흘리던 강철

프로레슬러 윤강철. 그는 원래 아주 심약한 소년이었어. 큰 덩치를 갖고 있음에도 여린 성격 때문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지. 언뜻 덩치가 크면 괴롭힘을 안 당할 것 같지만 커다란 샌드백이 때리기 쉽듯이 눈에 잘 띠고 독한 마음이 없는 순둥이들은 더욱 더 괴롭힘을 당한다구.

원래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잠깐 살다가 부산으로 온 그는 서울에서는 부산놈이라고 괴롭힘을 당했고, 부산에서는 서울말을 쓴다는 이유로 당했어. 하긴 윤강철을 괴롭히는 데 별다른 이유는 필요 없었을 꺼야. 윤강철과 같은 교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같이 있는 소위 1진들은 반에서 제일 덩치 큰 윤강철을 괴롭히는 것으로 자기들이 강한 존재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 뿐이지.

국민학교에서도 중학교에서도 그런 괴롭힘은 계속되었고 짝없는 운동화 한 짝만을 신은 채 집에 돌아오는 것도 서서히 이력이 나던 그였어. 그러던 그가 자신의 몸에 숨겨진 강한 힘을 처음 실감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는데, 같은 중학교를 나온 어떤 녀석이 길에서 윤강철을 보자 얼굴을 희번덕거리며 놀려대기 시작했고 그날따라 웬일인지 참을 수가 없어 오른손을 크게 휘두르며 밀어버렸던 거야.

그런데 그러자 상대는 뒤로 고꾸라지며 한 바퀴 구르면서 복도 끝까지 굴러가 버렸다고. 윤강철은 자신의 힘에 깜짝 놀랐고 보복이 두려워 먼저 학교에서 도망가 버리고 말았지. 자신의 힘을 느꼈지만 그 힘의 사용법을 몰랐던 윤강철은 피신처로 선택했던 만화방에서 최배달의 일생을 그린 바람의 파이터를 보고 그야말로 푹 빠져버렸고, 만화책에 나온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어.


덩치는 컸지만 여린 마음. 그리고 짝이 맞지 않았던 운동화가 유난히 많았던 어린 시절

바람의 파이터

처음엔 무릎을 대고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손바닥으로 정권으로 그리고 손가락 세 개로. 10개씩 30개씩 50개씩 100개씩. 뒷산에 올라가 나무에 로프를 감아두고 만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단련을 했지. 워낙 강골인 탓에 몸에 근육도 잘 붙기 시작했고 움직임도 빨라졌어.

학교 옥상에서 1진들에게 불려갔지만 집단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알았어. 별로 아프지 않다는 걸. 아니 예전에도 별로 아프지 않았었지. 주먹으로 맞는다는 것에 마음 속으로 놀라서 아프다고 느꼈을 뿐이지. 강하고 질긴 근육을 예전부터 갖고 있던 그에게 동년배의 주먹질을 사실 별 데미지가 없던 거였어. 별로 아프지 않고 견딜만한 수준이라는 걸 자각하자 주먹을 들어서 무리 중 한 녀석을 향해서 날려봤지. 퍼억 하면서 턱에 꽂혔고 에니콜 폴더가 접히듯이 허리가 고꾸라지면서 쓰러졌어. 원펀치 킬러펀치. 윤강철 전설의 시작이었지.

직업군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바로 들어갔지. 여기서 그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하나 내려. 바로 직업군인이 되기로 한 거야. 이제 완전히 스포츠맨이 된 그는 차라리 군대에서 매일 운동하며 사는 것이 편할 거라고 생각했어. 어려워진 가정형편도 한 몫 했지. 원래 유복했던 집안이었지만 아버지가 병치레를 하시면서 많이 힘들어졌거든. 이사를 갈 때 마다 그의 훌쩍 커버린 키를 감당 못하는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갔지. 어렸을 때 그렇게 살갑게 굴던 친척들도 가세가 기울자 서서히 얼굴 볼 일이 없어졌어.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일. 안정적인 일. 바로 군대라고 생각했던 거야.


군대가 딱 체질이었던 윤중사

학교, 보디빌딩, 합기도

직업군인으로 있으면서도 대학교에 들어가지.언젠가 사회 나가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거기서도 공부를 열심히 했어.남들처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면 통째로 암기하면서 공부를 했지. 결국 장학금도 받았다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보디빌딩대회에서 입상을 하기도 했고 국제합기도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지.

이 때의 윤강철은 부대원 10명과 연속해서 씨름을 해도 모두 다 이길 정도로 절정의 체력을 과시했지. 매일 운동했거든. 보통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매일 운동하고 남자들과 어울리는 생활이 그에겐 굉장히 잘 어울렸던 거야. 세상에 군대가 체질이라니.

그때 프로레슬링을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이야기를 얼핏 들었어. 한창 국내케이블 TV에서 미국 프로레슬링을 막 틀어주던 때라 스톤 콜드, 더 락 같은 사나이들이 매일같이 TV에 나오던 때였지. 기본적으로 쇼라고 생각했지만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내가 못할 게 어디 있어. 운동하면서 돈도 벌면 그게 더 좋지."

신한국프로레슬링 입문

마침 다녔던 대학교의 교수님이 신한국 프로레슬링의 고문과 친구 사이여서 윤강철을 단체에 소개했고, 프로필 자료를 보냈지. 그런데 단박에 붙어버렸어. 그는 아마 한국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초로 '서류전형'으로만 합격한 최초의 인물일 거야.

하지만 협회에서는 직업군인과 프로레슬링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고 했어. 해외 훈련과 대회가 있는 상황에서 군인이라는 신분으로는 제약이 많았지. 이미 10년 동안 했던 군생활. 20대의 모든 것이 1.5리터 생수병처럼 다 들어가 있는 군대. 원래 술을 마시진 않지만 숙소 앞 구멍가게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다가 한 번에 다 비우고 그는 꺼억 크게 트림 한 번 하고 소리쳤지.

"마 이만하면 됐다!"

그날로 전역을 한 그는 서울로 올라갔지. 그리고 바로 협회의 주선으로 멕시코 무자수행을 떠났어.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도 한 마디 못하는 그였지만 거침이 없었어. 원래부터 준비성, 정교함 이런 것 보다는 박력, 돌진 이런 단어와 친숙한 그였거든.


멕시코 무자수행중. 훈련을 마치고

타이거마스크와 동문이 되다

협회의 주선으로 멕시코 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인 AAA의 회장인 안톤 페냐를 만났어. 130kg의 거구에 항상 정장과 벤츠 그리고 시가를 입에 물고 다니는 이 사나이는 그냥 한 눈에 보더라도 느낌이 오는 사내였지. 안톤 페냐는 한국에서 온 윤강철을 어여삐 봤는 지 바로 숙소를 제공하고 도장으로 안내했지.그 곳에서 만난 이가 바로 알칸겔이야. 바로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타이거마스크의 스승이었던 사람이지.

도장은 6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실력을 증명 받을수록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면서 상위 클래스의 지도를 받을 수가 있었어. 운동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처음부터 2층에서 수업을 시작했지. 알칸겔은 나이가 60이 넘었지만 아직도 링에서 훨훨 날아다녔고 윤강철은 그걸 쫓아가기에 버거웠어. 도장이 있는 곳의 해발고도가 높았기에 산소가 부족했고 체력이 좋던 윤강철도 거기선 힘이 쭉 빠진 채로 지낼 수 밖에 없었지. 하지만 윤강철이 누구야. 근성과 깡이 빠지면 몸 안에서 DNA 염기서열 한 조각도 안 남는 사내가 아니던가.

악물고 뛰고
악물고 뛰고
악물고 뛰고

그렇게 멕시코 탑 클래스 레슬러들과 몸을 섞으면서 기량을 끌어 올렸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알칸겔은 조용히 그를 불러냈어. 그리고 경기장으로 데려갔지. 경기장에서는 이미 한 경기가 끝나고 다음 경기가 준비 중 이었어. 설마? 하며 알칸겔을 쳐다 보고 봤는데, 그는 손가락으로 링을 가리키며 올라가라고 했어. 사실 윤강철은 그 경기내용을 아직도 기억 못하고 있어. 자신이 무슨 기술을 사용했는지, 상대는 누구였는지.

다만 알칸겔은 말도 안 통하는 상태에서 고생하던 제자를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선물을 챙겨주고 싶었던 거지. 물론 자신의 에이전트수수료 20%를 떼어가긴 했지만 말이야.


NKPWA 제 3대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윤강철

한국 프로레슬링의 기대주 그러나 힘든 현실

그렇게 힘든 수련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미국 TNA의 챔피언들을 상대로 멋진 데뷔전을 만들어냈지. 그간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공중살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신세대 프로레슬러에 팬들은 열광했어. 지금까지 침체기였던 한국프로레슬링을 다시 부흥시킬 인물로 다들 주저 없이 그를 지목했어. 하지만 그것 뿐이었어. 협회가 재정난에 빠지면서 그에게 약속했던 원 룸과 월 고정 급여는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그는 실업자가 되어버렸지.

일년에 경기는 고작해야 1~3번. 그것 가지고는 밥값을 대기도 힘들었어. 돈을 벌기 위해서 양계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막노동을 하기도 했지. 하지만 꿈을 버릴 수는 없었어. 돈이 된다고 하기에 택배일을 시작했지.

처음엔 오토바이 퀵서비스를 했으나 몸을 단련하기 위해서 다마스 택배로 바꿨어. 오토바이로 나르는 물건들은 너무 작아서 운동이 되지 않거든. 그래서 무거운 짐을 나르는 다마스 택배를 하기로 결정한 거야. 3층이던 10층이던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일부러 계단을 오르내렸지. 배달이 늦는다고 짜증을 내는 고객도 있었지만 하체를 단련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어.


아침엔 맥도날드, 낮엔 무에타이 도장사범, 저녁엔 퀵서비스

퀵 서비스 챔피언 윤강철

사실 그는 이미 장애인이야. 척추 주변의 뼈가 이미 부러진 상태인데 두텁고 강한 척추기립근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어서 움직일 수 있는거야. 그 외에 인대가 끊어지는 수준의 부상은 수두룩하지. 아마 팬들이라면 알 수 있을 걸. 해가 지날수록 그의 공중제비가 느려진 다는 걸. 의사는 그가 프로레슬러라는 것을 듣자 마자 기겁을 하면서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했고, 윤강철은 지금 그걸 온 몸으로 거부하면서 프로레슬링의 한 가운데로 폭진하고 있는 것이지.

매일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밤에는 다마스에 화물을 채우고 서울에서 용인으로 천안으로 전국을 돌아다니지.

그런 그가 2009년 3월에 열린 대회에서 일본과 독일선수를 꺾고 챔피언에 올랐어. 대한민국 프로레슬링 역사상 30년만에 나온 30대 세계챔피언이야. 대단한 일이지.

그는 지금 쓰리잡이야. 아침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배달하고 낮엔 무에타이 도장에서 사범으로 일을 해. 그리고 저녁과 새벽엔 다마스 택배를 하고 있어.
300만원의 보증금을 주고 협회에서 가져온 챔피언 벨트를 그는 매일 쳐다보며 살지.

그 벨트는 단순히 자신이 강하다는 증명이 아니야. 그의 삶의 증명이라고 할 수 있어. 이런 힘든 삶을 살면서도 링을 만들고 단체를 만들고 대회를 주최할 꿈을 가지고 있어.

그렇게 하기 위해선 독해져야만 하지.
그는 정말 챔피언 벨트가 어울리는 남자고 정말 독한 남자야.
진짜 독한 남자야. 윤강철이란 남자는.


글쓴이 : 김남훈김남훈(UFC 해설자, WWA 프로레슬러, (주) OFK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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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윤강철이라... 들어보긴 했는데 잘 모르겠다.
그걸떠나서 나도 한때는 미국 레슬링(WWF)에 빠져 있었다.
화려한 기술, 쇼맨쉽, 그리고 알 수 없는 스토리까지...

우리나라 레슬러들도 좋아했지만 일년에 경기도 별로 없고 인기있는 선수라곤
나이 많으신 이왕표님;;;, 노지심님뿐...
지금 우리나라 프로레슬링 말이 아니다.
프로레슬링 팬으로서 힘든데도 명맥을 유지하시는게 대단할 정도이다.(다큐랑 이런걸좀 봤음)

나도 레슬링 팬으로 한번 끄적여 본다.
우리나라에 지금 레슬링 단체가 두개 있다.(내가아는 바론...)
WWA(한국프로레슬링연맹) - http://www.wwatv.com/
NKPWA(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 - http://www.nkpw.co.kr/

위에 단체는 울나라에 아주 그나마 사람들이 알고있는 이왕표님 소속 단체
밑에 꺼는 새로 생긴거라 모르겠다. (위 글보면 윤강철님 소속)
안그래도 힘든데 나눠서 뭐하자는 건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챔피언벨트 2개 만들면 달라지나??
단체 수를 가지고 딴지를 걸자는게 아니고 서로 힙을 합쳐도 시원찮은 판에
나눠서 일을 진행하니 말이다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면 과거의 기억으로 밖에 남지 않는다.
팬으로써 너무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
한국 씨름을 보면 알것이다.
한때 엄청 인기 있었지만 지금은 명절때 볼 수 있는 민속경기 수준이다.

미국처럼 엔터테이먼트적 요소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레슬러도 대중을 위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체는 다르지만 목표가 같은 만큼 서로 힘을 합쳐
한국 프로레슬링 전성기를 다시 누렸으면 한다.

(글을 잘 못쓰지만 생각을 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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